크리에이터 인터뷰
-아티스트-
영화처럼 그려내는 인생
강인함은 삶의 어려움을 겪기 위한 힘이예요.
Stephen Palladino에 따르면, 뉴욕의 개인주의적 사회는 이러한 강인함을 시험하기에 완벽한 장소입니다.
Palladino는 소통의 한 형태라고 여기는 그림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브롱크스 출신의 아티스트 Palladino를 만나
작품 활동을 통해 계속해서 형성해 나가는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Palladino가 GA-110과 뉴욕에서 영감을 받아 이번 특집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작품입니다. 뉴요커는 흔히 걷기를 좋아한다고 하며 걷는 것은 도시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노란색 택시, 자전거 타는 사람,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 높이 솟은 마천루가 인상적인 뉴욕 특유의 풍경이 작품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Palladino는 도시의 정신이 개인주의에서 비롯되었으며 작품에서 보이는 다양한 색깔이 그 생각을 반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시계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작은 우주, 즉 도시의 일상이 펼쳐지는 상상 속의 뉴욕과도 같다고 설명합니다.
인터뷰
영감과 에너지를
불어넣는 도시
그의 작품은 미국 만화풍의 캐릭터로 채워져 있고, 그 붓터치에는 뉴욕의 도시 풍경을 정의하는 그래피티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Stephen Palladino는 브러시 펜, 잉크, 에어브러시, 디지털 태블릿 등 다양한 도구를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활용하며 캔버스 위에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아이디어를 빠르게 그려냅니다. Palladino에게 있어서 그림은 말이나 글보다 더 자연스럽게 나오는 의사소통의 한 형태입니다. 진정한 아티스트이자 뉴욕 토박이인 Palladino와 함께 수많은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도시, 뉴욕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강인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작품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제 작품은 그림이 중심이긴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하고 있어요. 아티스트 활동 외에도 상업 프로젝트, 컨설팅, 디자인, 할리우드 영화나 뮤직비디오의 세트 디자인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죠. 그래서 로스앤젤레스와 플로리다 사이를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종종 제 안에 여러 명의 아티스트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그 각각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죠. 최근에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른바 '불가능한 구상'을 실현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고요 예를 들어, 라이브 스트리밍을 조용히 시험해보기 시작했어요. 생소한 것, 심지어 처음에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거든요.
―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는 아이디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그 중 하나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수년간 그림을 그리며 그 과정에서 특정 스타일과 캐릭터, 독창적인 세계로 구성된 저만의 시각적 언어를 구축해 왔어요. 제 작품의 모든 것은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예요. 참고 자료를 찾아보거나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최근에는 좀 더 계획적인 방식으로 작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 한 사람이 살면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그렇기에 꼭 그 이야기들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최근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제 작품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저는 제 이야기를 더 깊이 전달할 수 있는 그림을 상상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제가 만든 작품들도 제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제게는 중요하죠. 하지만 앞으로는 제게 개인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드로잉 도구와 완성된 작품이 가득한 Palladino의 스튜디오. 심지어 하얀 벽조차 그에게는 이상적인 캔버스가 됩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에어브러시를 집어 들고 새롭게 떠오른 아이디어를 순식간에 그려냈습니다.
―― 그림을 처음 시작한 시기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제가 3살에서 4살 사이였을 때, 어머니는 제가 그린 그림을 보고 겁이 났다고 하셨죠. 아이에게 종이를 주면 보통 낙서만 하잖아요. 하지만 제 그림은 아주 구체적이어서 어머니는 제가 방에 혼자 있는 동안 누군가 창문으로 그림을 전해준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지요. 제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하니까, 어머니는 믿지 않고 증명해 보라고 했어요. 어머니 옆에 앉아 그림을 그렸는데, 어머니가 왜 그렇게 놀라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저에게는 말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요.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자 어머니는 흥분한 기색으로 제 그림을 아버지께 보여주셨어요. 아버지는 문신이 있는 구식 자동차 애호가이자, 손재주가 좋아 무엇이든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 분이셨어요. 아버지도 충격을 받고 흥분하셨죠. 아버지는 항상 "뭘 따라 그렸니?"라고 물으셨죠. 아버지의 말투는 마치 내가 거짓말을 하는 지 확인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따라 그린 게 아니라는 것뿐이었어요. 저는 그냥 그린 거니까요.
―― 아버지가 당신께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어요.
아버지는 목수였고, 항상 귀 뒤에 연필을 넣고 다니셨어요. 아버지는 매우 빠르게 그림을 그릴 수 있으셨어요. 저는 어릴 때 아버지와 건설 현장에 자주 다녔어요.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는 나무로 작업하는 아티스트셨어요. 아버지는 벽의 건식 벽체에 뽀빠이 그림을 빠르게 그리고는 칼로 오려내곤 하셨죠. 벽 아래로 제가 어릴 때 그렸던 뽀빠이 그림과 스케치가 보였어요. 아버지는 독특한 분이셨어요. 짐이나 물건을 챙기지 않고 비행기에 탈 수 있는 분이셨죠. 옛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물건들을 열정적으로 수집하셨고, 우리 집을 1950년대풍 식당 분위기로 꾸며 놓기도 하셨지요. 엄청난 추진력과 두려움 없는 기개, 뛰어난 상상력을 지닌 분이셨어요.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아버지는 가장 예술적인 분이었어요. 아버지의 열정과 창의성, 옛 시절의 감성은 아직도 제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어요. 이제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셨기에, 부모님이 남기신 말씀과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지곤 하죠.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이 아픔은 사랑의 증거이자 두 분을 기리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저에게 예술이란 삶의 경험을 풀어내고, 두 분을 기억하며 기리는 수단이 되었어요. 말로 무언가를 설명하려 애쓰는 일은 이제 다소 지겹지만, 그림을 그릴 때면 마음을 온전히 표현해 낼 수 있어요. 이 일상을 영화 같은 이미지로 그려내면 아름답게 느껴지지요. 또한 과거의 짐을 덜어주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치료법처럼 느껴져요.
Palladino의 스튜디오 코너. 도구와 그림이 거의 모든 표면을 뒤덮어, 공간 전체를 하나의 캔버스로 탈바꿈.
―― 그래피티 문화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열두 살쯤 되었을 때 작은 미술 학교에 가곤 했어요. 당시에는 예술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다소 부끄럽기도 하고 남의 시선도 의식되곤 했지요. 그 무렵 주변에서 본 것 중에선 그래피티가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어린 시절, 도시 곳곳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브롱크스 출신의 그래피티 그룹인 Tats Cru가 그린 Fat Joe의 앨범 커버 속 거대한 초상화 같은 작품들을 구경하곤 했어요. 그런 작품을 보고 큰 영향을 받았어요. 아버지는 그래피티를 싫어하셔서 제가 스프레이 캔을 들고 나갈 때면 꾸중하시곤 했지만, 동시에 깊은 인상을 받으신 것 같기도 했어요. 아버지는 어떻게 스프레이 페인트로만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지 궁금해하셨어요. 저는 스스로를 그래피티 작가라고 부르지 않을 거예요. 예전에 태그를 해본 경험은 있지만, 그 방식으로 제 흔적을 남기는 데 크게 몰두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면서 저는 캐릭터 작업, 에어브러싱, 페인팅에 더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 후, 저는 간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에어브러싱이나 조각과 같은 다양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저는 전통적인 유화 및 아크릴 페인팅부터 스프레이 페인트, 디지털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며 작업해요. 재능은 타고난 것이지만, 기술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거든요.
―― 작품에 일관된 메시지나 테마가 있으신가요?
제 작품에는 당시 제가 느꼈던 모든 느낌이 반영돼요. 가끔은 어두울수록 더 좋다고 느껴지기도 하고요. 다른 때는 고통과 유머를 섞기도 하고요. 저는 삶의 이중적인 성격과 행복이 클수록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고통도 커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병상에 계실 때 아버지는 제가 초기에 그린 캔버스 그림들을 보시고 이런저런 의견을 말씀하시곤 했어요. 우리 집안의 뿌리가 시칠리아에 있으니 그림을 좀 더 이탈리아식 분위기로 만들라거나, 그림 속 인물에게 담배를 쥐여주라는 등의 의견이었죠. 심지어 지금도 그림을 그릴 때, 종종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요. 아버지는 항상 그냥 그리라고 말씀하실 거예요. 가장 쉽게 떠오르는 표현은 별다른 생각 없이 나온 것들인데, 바로 그런 표현이 사람들의 반응을 가장 크게 이끌어내곤 해요. 저는 그런 표현들이 순수한 에너지와 감성적인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뉴욕의 어떤 점을 사랑하나요? 그리고 무엇이 활력을 불어넣나요?
뉴욕이 특별한 이유는 개인주의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스타일과 개성을 표현해 나가는 사람들요. 사람들은 뉴욕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고 저는 여기서 태어난 것이 진짜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백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만 가지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존재하는 셈이거든요. 이 도시의 페이스도 저에게 완벽하게 잘 맞고요. 저를 압도하는 대신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에너지를 충전해 주거든요.
―― 당신에게 강인함은 어떤 의미인가요?
강인함은 인생의 어려움에 맞서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은 때때로 거칠고 심지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포기하고 싶은 느낌이 들었을 때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모든 것을 내던져버리고 싶은 바로 그 순간이, 사실은 쉽게 얻을 수 없는 뭔가 더 의미 있는 것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이 한계를 넘고 계속 나아가야 해요. 제게 강인함이란 자신의 정신과 인내력을 시험하는 과정으로, 이런 도전 너머의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예요.
Palladino의 스튜디오 코너. 도구와 그림이 거의 모든 표면을 뒤덮어, 공간 전체를 하나의 캔버스로 탈바꿈.
스튜디오의 바닥. 에어브러시, 붓, 잉크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묘하게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책상에 있든 바닥에 있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Palladino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도구를 집어 들고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프로필.
Stephen Palladino
1986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 출생. Palladino는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 일찍부터 미술과 일러스트레이션에 둘러싸여 자랐습니다. 그의 작품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애니메이션과 고향인 브롱크스의 그래피티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만화를 연상시키는 추상적인 캐릭터와 그래피티에서 영향을 받은 붓놀림과 색깔이 특징입니다. Palladino는 브러시 펜, 잉크, 에어브러시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합니다.
Instagram. @stephenpalladino
사진. Ryuta Hironaga
인터뷰. Shagani Nakagawa
텍스트 & 편집. Yutaro Okamoto_THOUS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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